총무원장 자승 스님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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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용근 작성일2011.02.24 조회1,855회 댓글0건본문
추 도 사
원파당 혜정 대종사님!
세속을 여읜 속리산, 진리 속에 머무르는 이곳 법주사에 어느덧 춘색이 완연합니다. 여느 때처럼 이곳 사리각에서 대중들과 똑같이 정진하시고, 공양하시며, 스스로를 '고정판'이라 낮추신 채 깨끗한 지혜를 전해주시더니 봄바람 가득한 오늘, 천희(千喜)와 만락(萬樂)이 모두 일장춘몽이라고 일갈하고 떠나십니까?
生從何處來(생종하처래)
死向何處去(사향하처거)
반세기 전 이 글귀를 따라 생사의 의문을 풀기 위해 불문에 드셨던 큰스님께서는 일찍이 경허, 만공으로 이어지는 한국불교의 선맥을 이은 금오스님의 문하에서 수학하시고 평생 동안 화두 참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화두 또한 공부하는 방법이기에 그것을 버리고 무심의 경지에 들어가야 하며, 또한 무심에 주저앉으면 귀신굴에 빠지는 것이니 다시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하는 마음으로 한 발짝 더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렇게 누구보다 참선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지만 교학의 중요성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경전은 수행자의 이정표이며, 신심을 확고하게 하고, 바깥 경계에 흔들릴 때도 다시 초발심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문자 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 법주사 강원에 내외전을 모두 교과과정에 도입하시어 강원교육은 물론 승가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신 것 또한 스님의 혜안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또한 큰스님께서는 종단의 정화불사에 참여하시고 총무원장을 비롯한 중요 소임을 두루 거치셨습니다. 종문(宗門)의 기틀을 확립해가는 중요한 시기에 그것을 사판의 일이라고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늘의 조계종이 존립할 수 있는 주춧돌을 놓아 주셨습니다.
총무원장 직을 놓은 뒤에는 다시 불국사 선원으로, 해인사와 봉암사, 수덕사 선원을 편력하시며 수행에 매진하셨습니다. 이는 큰스님께서 이(理)와 사(事) 모두에 걸림이 없으셨기 때문이며 선(禪)과 교(敎), 율(律)을 두루 겸수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혜정 대종사님!
'미륵부처가 올 때 연락할 테니 그때 법주사를 다시 찾아라'고 하시더니 오늘 이 기별은 진정 미륵부처의 소식입니까?
생사 기별이 모두 공한 것이라지만 눈 밝은 스승을 더 오래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속에 사무칩니다. 부디 속히 환도중생하시어 사람과 하늘의 큰 복밭을 일구어 주소서.
불기2555년 2월 21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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