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호국영령 유해발굴 신원확인 1% 불과…시료 확보‘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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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진표 작성일2019.09.29 댓글0건본문
[앵커멘트]
6.25 전쟁 당시 초야에 묻혔던
호국영령의 유해 중 발굴된 유해는
모두 만 여구에 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겨우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도에 노진표 기자입니다.
[리포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전국에서 발굴한 유해는 만 2백여 구.
이 중 신원이 밝혀진 유해는
고작 134구에 불과합니다.
특히 충북지역에서 발굴된
전체 유해 137구 중에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단 1구에 그쳤습니다.
6.25 전쟁 당시
7사단 9연대 3대대 소속이였던
고 강태수 일병 1명뿐입니다.
감식단은 이름 없는 무명용사들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홍보활동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DNA 시료가 턱없이 부족해
유해를 발굴하더라도
해당 유해가 어떤 참전용사의 것인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식단은 아직도 땅에 묻혀있을 유해가
11만 3천여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유전자 시료는
4만 4천 여개.
전체 유해의 1/3 수준의 시료는 확인됐지만
아직 7만여개나 부족합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전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명용사들의 직계 유가족들도 이미 유명을 달리해
시료채취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시료 채취를 위해선
오로지 유가족들의 협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무명용사들의 먼 친척에게까지 협조를 강요할 수도 없어
시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서트]
유해발굴감식단 김수한 원사입니다.
“전사자 대비 유가족 DNA 시료 채취율이 굉장히 저조합니다.
유가족 분들이 적극적으로 DNA 시료 채취를 해주신다면
지금 저희가 관리하는 더 많은 분들이 신원이 확인돼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습니다.”
목숨 바쳐 싸워 나라를 지켰던 호국 영령들.
아직도 만 명이 넘는 호국 영령들이
무명용사로 남아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초야에 묻혔던
호국영령의 유해 중 발굴된 유해는
모두 만 여구에 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겨우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도에 노진표 기자입니다.
[리포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전국에서 발굴한 유해는 만 2백여 구.
이 중 신원이 밝혀진 유해는
고작 134구에 불과합니다.
특히 충북지역에서 발굴된
전체 유해 137구 중에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단 1구에 그쳤습니다.
6.25 전쟁 당시
7사단 9연대 3대대 소속이였던
고 강태수 일병 1명뿐입니다.
감식단은 이름 없는 무명용사들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홍보활동 등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DNA 시료가 턱없이 부족해
유해를 발굴하더라도
해당 유해가 어떤 참전용사의 것인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식단은 아직도 땅에 묻혀있을 유해가
11만 3천여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유전자 시료는
4만 4천 여개.
전체 유해의 1/3 수준의 시료는 확인됐지만
아직 7만여개나 부족합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전 이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명용사들의 직계 유가족들도 이미 유명을 달리해
시료채취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시료 채취를 위해선
오로지 유가족들의 협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무명용사들의 먼 친척에게까지 협조를 강요할 수도 없어
시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인서트]
유해발굴감식단 김수한 원사입니다.
“전사자 대비 유가족 DNA 시료 채취율이 굉장히 저조합니다.
유가족 분들이 적극적으로 DNA 시료 채취를 해주신다면
지금 저희가 관리하는 더 많은 분들이 신원이 확인돼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습니다.”
목숨 바쳐 싸워 나라를 지켰던 호국 영령들.
아직도 만 명이 넘는 호국 영령들이
무명용사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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