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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혁연 초빙교수 "속세를 떠난 산, 법주사 품은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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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3.02.1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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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 진행 : 연현철 기자

■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오전 8시 30분 '충북저널967' (청주FM 96.7MHz 충주FM 106.7MHz)

■ 코너명 : 라디오 충북역사 기행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방송 다시 듣기는 BBS청주불교방송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

 

 ▷연현철 : 저희 BBS청주불교방송 충북저널 967이 프로그램 개편을 맞아 2월 새로운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저희 충북저널 967은 격주로 목요일 이 시간에 충북대 사학과 조혁연 교수 초빙교수의 ‘라디오로 떠나는 충북역사 기행’이라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라디오로 떠나는 충북역사 기행 코너는 조혁연 교수로부터 도내 곳곳에 숨어있는 역사 이야기를 찾아서 역사를 알기 쉽게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청취자 여러분께 유익한 정보전달 약속드리면서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조혁연교수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조혁연  :  네, 안녕하세요. 조혁연입니다.

 

 ▷연현철 : 오늘은 방송 첫날인데, <법주사를 품고 있는 속리산>에 대해 얘기를 준비해주셨다고요, 먼저 우리고장 최고 명산 중 하나인 속리산을 간단히 소개해 주실까요.

 

 ▷조혁연  : 서서히 등산의 계절이 돌아오는데요.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속리산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흔히 속리산을 가르켜 8봉 8대를 품고 있는 산이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이때의 8봉은 천왕봉·비로봉·길상봉·문수봉·보현봉·관음봉·묘봉·수정봉 등 8개의 봉우리를 말하고 8대는 문장대·입석대·경업대·배석대·학소대·신선대·봉황대·산호대 이렇게 8개의 암벽내지 암반을 말합니다. 그리고 지난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구요, 최고봉은 1천58m의 천왕봉이다.

 

▷연현철 : 그렇군요. 그런데요 교수님,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 산’이라는 뜻으로, 그 지명 자체가 매우 철학적인데,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조혁연  : 속리산 중턱에 위치한 세심정으로 오르다 보면 한자로 써놓은 일종의 표지판을 볼 수 있는데요. 한자로,‘보불원인 인원도, 산비속리 속리산’이라고 써놓았는데요. 해석하면 ‘도가 사람을 멀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멀리했고, 산이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난 것이다’이렇게 되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아마 속리산의 지명이 나왔다고 추정하는데, 이 내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유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중용’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지명 속리산은 <고려사> 지리지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연현철 :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처럼 조선시대 선비들도 속리산 하면 ‘속세를 떠난 산’으로 인식했고, 이 같은 생각이 시로 많이 남았다면서요?

 

▷조혁연  : 네, 많은 선비들이 속리산을 찾았는데요. 그 중 한 분의 시를 소개하자면 조선 숙종 때의 문인으로 ‘정시한’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속리산 귀로우제’라는 한시에서 속리산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 구름 낀 산에 들어가니 세상 생각 없어져 / 마치 학을 타고 생황 불며 찬 바람 타고 온 듯하네.

속세 인연 미진해 왔던길 찾으며 되돌아보니 / 첩첩의 골짜기에 신선이 사는 돌집이 있구나‘ 이렇게 읊었습니다.

 

▷연현철 :  속리산은 지질공원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지질현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어떤 현상이 존재하고 있나요.

 

▷조혁연  : 아주 기암절벽, 암벽 이런 것이 많은데요. 그런데 이것을 갖다 지질학 시각으로 보면 전문용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토오르·캐슬코피·웨더링팬 등 현상이 관찰된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봤던 산체인데,  토오로는 입석대 같은 수직 바위를 말하고, 캐슬코피는 성처럼 생긴 바위, 즉 문장대가 이런 현상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 문장대 정상에 올라가면 풍화혈이 솥처럼 패여있는 것을 관찰 할 수 있는데, 바로 지질학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웨더링팬 현상이다.

 

▷연현철 :  그러니까 방금 언급한 ‘웨더링팬’ 현상으로 인해 문장대에서는 이른바 ‘삼파수 현상’이 일어난다면서요. 사실일까요.

 

▷조혁연  : 삼파수는 물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진다는 표현인데요. 이것이 백두대간이기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조선 중종 때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속리산 문장대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였다.

“문장대의 넓이는 사람 3천 명이 앉을 만하고, 대 위에 구덩이가 가마솥 만한 것이 있어, 이게 웨더링팬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불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가서 달천이 된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래서 이건 백두대간의 분수, 즉 수계를 나누는 현상을 좀 과장해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신기하네요. 진짜. 그런데 교수님 역사 속에도 속리산과 관련해서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고요. 어떤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까?

 

▶조혁연 : 많은 분들을 찾았지만 우리 주변의 인물을 보면요. 조선 전기 수양대군 세조가 당시 복천암 주지인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속리산을 찾았고요. 그 유명한 정이품송 설화가 만들어집니다. 그 다음에 유명 인물로는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을 방문한 기록이 있고요. 그의 아버지인 ‘작제건’이 아예 인생 말년을 속리산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고려사> 서문에는 작제건과 관련해서 이런 표현이 보입니다. “만년에 속리산 장갑사에 가서 살면서 항상 불경을 읽다가 죽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요. 장갑사가 지금은 어느 절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보은군 산외면에는 우리가 잘 아는 장갑이라는 장갑리가 있죠. 길이 갈라지는. 그리고 통일신라 헌덕왕 때 김헌창이 굉장히 큰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때 속리산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이는데요. 그래서 신라 정부군하고 마지막으로 싸웠고. 이 전투에서 패한 후에 김헌창은 공주 공산성으로 가서 자결을 합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속리산에서도 사건, 사고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조혁연 : 사소하지만 1920년대 충북지사를 지낸 인물로 골수 친일파인데요 박중양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분은 말티고개를 처음으로 닦은 인물입니다. 본인이 걸어 올라가기 힘드니까 말티고개를 확장해요. 그래서 지금의 말티고개가 생겼는데. 이 사람이 법주사를 가서 저녁에 술도 먹고 그러다가 다음날 보니 20대 여성이 자결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지는 방송에서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여러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연현철 : 알겠습니다. 속리산에서는 앞서 언급하신대로 지질공원으로 불릴 마큼 암벽이 많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이와 관련된 산악사고도 적지 않았다면서요.

 

▶조혁연 : 네. 이런 사고도 있었습니다. <동아일보> 1968년 4월 13일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는데요. “전날 새벽 3시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속리산 비로봉에서 신병 요양을 겸해 축지법을 배우던 환자 3명이 높이 70m 되는 낭떠러지를 뛰어내려 모두 숨졌다. 사망자는 아무개 씨 등 3명인데 이들은 작년 1월부터 속리산 천황봉에 움막을 짓고 경북 상주읍 이모 씨를 축지법 선생으로 모시고 배워오던 중, 이날 새벽 축지법 실습을 한다고 비로봉 꼭대기에서 경사 85도의 낭떠러지를 이씨와 함께 뛰어내렸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비로봉은 해발 1천32m입니다. 

 

▷연현철 : 이런 일도 있었군요. 지금은 그렇진 않지만 속리산 법주사는 한때 최고의 신혼 여행지로 불렸다고요. 수학여행지기도 했고요. 사연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혁연 : 네. 아마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신혼여행지가 법주사인데요. 옛날 사진을 보면 그때는 콘크리트불이죠. 그 앞에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이때 사진 기사를 ‘찍새’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었죠. 그런데 이 분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즉석에서 찍고, 즉석에서 돈을 받았는데. 신혼부부들이 기분에 취해서 사진을 너무 많이 찍다보니 신혼비를 다 쓰고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재밌네요.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요즘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 기분이 나니까요. 속리산을 찾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조선시대 여행일기 하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혁연 : 조선 영조 때의 인물로 조경이라는 문신이 있습니다. 그분이 이런 일기문을 남겼는데요. 속리산을 잘 표현한 구절입니다.“나무가 빽빽하여 골짜기가 깊고 어두우며 몹시 추운 것이 귀신이 있을 것 같다. 고목이 많은데 그 큰 나무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나뭇가지 위에 날다람쥐가 날다 혹 땅에 떨어지는 것이 마치 사람을 움켜쥐는 듯했다. (중략) 서남쪽 골짜기에는 대나무가 더욱 많다. 빠른 바람이 대나무를 흔들면 그 잎이 모두 번쩍 들리며 움직이는 것이 마치 파도 같다. 모든 골짜기가 다함께 바람에 응하니 뒤따라 모든 나뭇잎이 이리저리 날리며 색을 바꿔 놓는다.”그렇게 표현했는데요. 법주사 사하촌 주민들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절까지 이 대나무로 복조리 만들어 충북 전역에 판매를 했습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준비해주신 질문이 많은데요. 저희가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 말씀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2주 후에 다시 한 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혁연 : 네. 고맙습니다.

 

▷연현철 : 지금까지 라디오로 떠나는 충북역사기행코너 조혁연 교수와 함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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