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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선권 여행작가 "왕권과 신권 균형 담은 근정전…투박한 박석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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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원 작성일2023.11.3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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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연현철 기자

□ 2023년 11월 30일 목요일 오전 8시 30분 '충북저널967' (청주FM 96.7MHz 충주FM 106.7MHz)

□ 코너명 : 여행스케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방송 다시 듣기는 BBS청주불교방송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

* 본 인터뷰 내용을 기사에 인용하거나 방송에 사용시 청주BBS '충북저널967' 프로그램명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연현철 :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여행 스케치’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님 나와 계십니다. 작가님 나와계시죠? 안녕하십니까.

 

▶김선권 : 네.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연현철 : 네. 작가님 오늘은 어디를 소개해 주실 건가요?

 

▶김선권 : 경복궁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흥례문을 지나 금천이 흐르는 영제교를 건너 경복궁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근정문 앞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근정문을 통해 임금님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연현철 : 개인적으로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세 개의 문을 거쳐 임금님을 뵈러 들어가는군요. 사실 그냥 지나치던 문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경복궁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 전해시죠.

 

▶김선권 : 진정한 왕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근정문 앞에 섰습니다. 근정문도 광화문이나 흥례문처럼 세 칸의 문이 있는데, 이 세 칸의 문은 신하를 위한 문이 아니었습니다. 근정문으로는 임금 내외와 세자 그리고 명나라 또는 청나라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오는 사신만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열고 평소에는 닫아두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근정문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품계가 높은 신하도 근정문으로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연현철 : 그럼 신하들은 어떻게 근정전을 어떻게 출입할 수 있었는지요?

 

▶김선권 : 근정문 양쪽으로 한 칸씩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문에 들어가려고 바라보고 있는 관람객을 기준으로 볼 때, 오른쪽은 해가 뜨는 동쪽이라 일화문(日華門), 서쪽인 왼쪽은 해의 상대적인 대상인 달을 넣어서 월화문(月華門)이라 하였습니다. 일화문과 월화문으로 문무관의 신하들이 출입했는데, 당시 서쪽보다는 동쪽이 우선이었고, 무관(武官)보다는 문관(文官)이 더 우대받는 사회였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일화문으로는 문관, 서쪽에 있는 월화문으로는 무관이 출입했습니다. 궁궐은 출입문 조차도 신분에 따라 명확한 차이를 두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앵커님, 정일품조차 출입할 수 없었던 근정문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과연 누구였을까요?

 

▷연현철 : 이건 제가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내시(內侍) 아닌가요?

 

▶김선권 : 네 맞습니다. 왕을 가까이서 보필하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정문에 들어서면 눈앞에 보이는 웅장한 전각이 바로 경복궁의 심장, 근정전입니다. 근정전(勤政殿)의 이름 역시도 조선의 브레인이자 개국 일등 공신이었던 정도전이 지었습니다. ‘근정(勤政)’이라는 의미를 한자(漢字) 뜻 그대로 해석하면 ‘부지런히 정치를 하라’는 뜻 볼 수가 있는데, 사실 그 속에는 ‘왕이 되어서 자잘한 일에 간섭하지 말고 반드시 군주가 해야 하는 큰 일을 부지런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찌 보면 왕에게 하는 정도전의 잔소리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연현철 : 네 사실 아무리 개국공신이라 해도, 정도전, 일개 신하에 불과했던 정도전이 왕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김선권 : 조선은 신하의 권력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항상 왕권(王權) 강화를 위해서 노력했죠. 조선은 군주제(君主制) 국가치고는 왕의 폭정이 다른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여기에는 신권(臣權)이 끊임없이 왕을 견제한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왕권과 신권이 균형을 이루어야 나라가 잘 굴러가는 법이죠. 단지 조선 후기에 들어서 신권이 너무 강해져서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요. 왕의 폭정을 경계하던 정도전의 숨은 의도가 근정전의 이름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연현철 : 그렇군요. 학창 시절 배웠던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확실히 조선시대는 왕권과 신권이 끊임없이 대립했던 역사였던 것 같습니다.

 

▶김선권 : 네 그렇습니다. 이제 근정문으로 들어가서 근정전 마당에 서보겠습니다. 근정전의 마당을 조정(朝廷)이라 했습니다. 우리 조정을 신하라고 하잖아요. 이런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나라의 큰 의식을 치르는 곳이라 어느 곳보다 넓고 위엄있는 모습입니다. 왕의 즉위식, 세자 책봉식, 명절에 신하들에게 하례를 받을 때, 중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근정전 앞에 펼쳐진 너른 마당, 조정은 의식을 치를 때 신하들이 서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정 대신들이 모이는 근정전 앞마당의 바닥이 참 특이합니다. 박석(薄石)이라는 거칠게 마감한 얇은 화강암이 깔려 있습니다.

 

▷연현철 : 저도 이게 궁금했었거든요. 박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궁궐 마당에 깔리는 돌이면 매끄럽고 화려하게 만들었을 것 같은데 왜 거칠게 돌이 마감됐는지 궁금했거든요.

 

▶김선권 : 박석을 이용해서 이렇게 바닥을 울퉁불퉁하게 만든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걸음걸이를 조심히 하고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관료들은 목화신을 신었는데, 밑창이 가죽으로 되어 있어서 비나 눈이 내리면 무척 미끄러웠습니다. 미끄러짐을 막기 위해 거칠게 마감한 박석을 깔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눈부심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이 박석을 하얗고, 반들반들하게 만들었다면 빛이 그대로 반사돼서 조정에 서 있는 신하들의 눈을 자극했을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박석의 표면을 이렇게 울퉁불퉁하게 만들었습니다.

 

▷연현철 : 이게 조정신하들을 위한 배려였군요. 마지막 세 번째이유는 어떻게 되죠?

 

▶김선권 : 소리의 울림 때문이었습니다. 조정은 꽤 넓은 공간이고 그때는 스피커가 없던 시대였잖아요. 넓은 공간에서 신하들이 다 들을 수 있게 말하려면 왕께서 엄청난 성량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소리가 잘 울리는 박석을 이용해서 좀 덜 크게 말해도 소리가 울려 신하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바닥을 만든 것입니다.

 

▷연현철 : 이번 마지막 이유는  신하보다는 왕을 위한 이유가 숨어있었네요.

 

▶김선권 : 이것 말고도 박석은 비 오는 날에 특별한 기능을 했습니다. 박석이 깔린 조정은 북쪽과 남쪽의 높이가 1m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비가 오면 박석 사이로 빗물이 흘러 자연스레 남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조정 전체를 보면 내린 빗물이 조정 밖으로 흘러나가도록 남쪽을 낮게 설계됐지만, 박석 한 장 한 장을 보면 남쪽을 살짝 들어 올려,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물줄기가 급하게 모이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뒤쪽을 살짝 올려서 비스듬하고 경사지게 박은 박석의 삐뚤삐뚤한 모양을 따라 빗물이 돌고 돌면서 물길의 속도를 늦췄습니다. 이렇듯 경복궁의 근정전은 수로와 같은 인위적인 배수로가 아닌 자연배수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경복궁에는 조선 최고의 건축미학이 숨어있습니다.

 

▷연현철 : 정말이지 무심코 지나치기 쉬웠을 박석에도 조상님들의 지혜가 감춰져 있었네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경복궁 근정문과 근정전의 마당 조정에 깔린 박석까지 설명해주셨습니다. 작가님 시간이 다 흘러서요. 오늘 말씀 여기서 정리하고 다음 주에 근정전 이야기를 이어서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선권 : 네 고맙습니다.

 

▷연현철 : 지금까지 여행작가 김선권 작가와 여러분 함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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