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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선권 여행작가 "동서양이 융합된 이국적인 풍경... 서울 덕수궁으로 '궁캉스'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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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2.08.04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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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이호상 기자

■ 2022년 8월 4일 목요일 오전 8시 30분 '충북저널967' (청주FM 96.7MHz 충주FM 106.7MHz)

■ 코너명 : 여행스케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호상 : 매주 목요일 격주로 전해드리는 코너죠.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여행 스케치’ 시간입니다.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님 나와계시죠? 안녕하세요.

 

▶김선권 :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이호상 : 작가님, 오랜만에 목소리 듣습니다. 

 

▶김선권 : 그렇네요.

 

▷이호상 : 저 역시 긴 휴가를 다녀왔는데요. 작가님은 휴가 다녀오셨어요?

 

▶김선권 : 저는 못 갔습니다. 

 

▷이호상 : 하긴, 작가님은 늘 일상이 여행이시니...

 

▶김선권 : 네, 휴가라고 할 건 없고 짧게 짧게 다니고 있습니다. 

 

▷이호상 : 아, 그럼 오늘은 어디를 좀 소개해 주실 건가요?

 

▶김선권 : 오늘은 궁캉스를 떠나 보겠습니다. 보통 휴가라고 하면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이동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서울은 볼거리가 정말 많은 도시입니다. 서울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100년 전인 1392년도에 세워진 아주 오래된 도시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서울에서의 휴가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이호상 : 사실 저는 지방에 살다 보니 서울에 간혹 갈 일있으면 답답하고 차도 많이 막혀 그런 생각이 드는데, 궁캉스라면 궁궐로 떠나는 휴가를 말씀하시는 거죠? 궁궐은 사실 현재로 말하면 청와대 같은 공간, 옛날 임금님이 거주하시며 업무를 보던 공간 아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그 시대의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서 궁궐을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김선권 : 궁궐은 조선 시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마련한 일터이자 살았던 공간입니다. 왕이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아주 좋은 터에 궁궐을 지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의 다섯 궁궐에는 조선 시대 왕이 머물렀던 모든 정보가 그대로 다 남겨져 있습니다. 궁궐은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고, 조선을 다스렸던 왕과 왕의 가족들이 살았던 공간이며, 조선의 역사가 끝난 곳입니다.

 

▷이호상 : 그렇죠. 아픈 공간이기도 한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경복궁은 가봤는데, 오늘 소개해 주실 곳은 어디입니까?

 

▶김선권 : 오늘 소개할 곳은 덕수궁입니다. 덕수궁은 노래가사에도 많이 등장해서 가보시지 않은 분들도 친근감을 많이 느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문세 씨의 ‘광화문 연가’ 등 여러 노래에 등장해서 덕수궁 돌담길은 그냥 한번 걸어보고 싶은 그런 길이죠.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덕수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궁궐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조선 시대 궁궐은 우선 좋은 터를 찾아 궁궐건축의 규칙을 따라 건축하고 높은 담으로 경계를 만들었는데요. 그런데 덕수궁은 왕족의 집이었던 곳에 임금이 머물면서 궁궐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호상 : 그렇군요. 원래 덕수궁이 처음부터 궁궐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잖아요.

 

▶김선권 : 그렇습니다. 덕수궁은 조선 시대에 크게 두 차례 궁궐로 사용되었습니다.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되었던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 갔다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곳을 임시 궁궐인 정릉동 행궁으로 삼으면서부터입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새 이름을 붙여 경운궁이라고 불렀습니다.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기 러시아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입니다.

 

▷이호상 : 작가님 설명을 들으니 학교 다니며 역사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임진왜란 후에 그리고 아관파천 말씀 하시는거죠? 아관파천 후에 돌아온 곳이 덕수궁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역사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서 있던 곳이잖아요 사실, 이 덕수궁이요. 

 

▶김선권 : 조선 말기 정국은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개화 이후 물밀듯 들어온 서구 열강들의 조선에 대한 이권 다툼이 치열했습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새로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대한제국 선포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분명히 밝혀 정국을 주도해 나가고자 한 고종의 선택이자 강력한 의지였습니다.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게 경운궁 전각들을 다시 세웠습니다. 고종 당시의 덕수궁 권역은 현재 정동과 시청 앞 일대를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 궁역의 3배에 가까운 규모였다고 합니다.

 

▷이호상 : 사실 설명을 작가님께 듣고 있습니다만, 대한제국의 위상을 재건하는데 물론 궁궐의 위엄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혼란한 정국을 주도해 나가기 위해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한 것이잖아요? 

 

▶김선권 : 그렇죠. 고종의 의지와 시도는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1907년 고종은 결국 강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때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린 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습니다. 고종은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덕수궁은 고종 승하 이후 빠르게 해체, 축소되었습니다.

 

▷이호상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살았던 곳이죠, 덕수궁.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썼다는 말씀이신데, 궁호는 무엇을 말하는지요?

 

▶김선권 : 궁호(宮號)는 호의 일종으로 왕족들이 사용하는 별칭 중 하나입니다. 주로 공덕을 칭송하여 올리는 칭호를 말하는데요.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묘호가 있는데, 묘호(廟號)는 임금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기리어 붙인 이름을 말합니다.

 

▷이호상 : 궁호가 있고 묘호가 있다는 건데, 묘호라는 게, 태조 이성계, 태종 이방원 할 때, 태조와 태종 이런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이게 죽은 다음에 붙여지는 이름이었군요.

 

▶김선권 : 네 그렇습니다. 이제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을 통해서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들어가기 전에 볼거리가 있습니다.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입니다. 조선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궁성문 개폐 의식, 궁성 수위 의식, 순이 의식 등이 있었는데,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1996년부터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이라 칭하고 재현하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이렇게 두 차례 행해지고 있습니다.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으로 ‘나라가 편안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라’는 기원을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달리 1906년 이름을 고쳐 단 대한문(大漢門)은 ‘한양이 창대해진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호상 :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문보다는 대안문 의미가 좋은 것 같은데요? 덕수궁에 가려면 이왕이면 시간을 맞춰서 ‘왕궁 수문장 교대 의식’을 보는 게 좋겠네요.

 

▶김선권 : 저는 그 앞을 지나갈 때 꼭 덕수궁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시간이 되면 보고 지나갑니다. 대한문에 들어서면 금천교와 마주하게 됩니다. 금천교(禁川橋)는 궁궐마다 있는 명당수를 건너는 다리로 임금이 머무는 궁궐의 신성한 영역을 외부와 구분 짓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이호상 : 그렇군요. 우리가 절에 들어갈 때 입구에 일주문이 있거든요? 일주문을 지나면 바야흐로 이제 절에 들어간다고 의미를 부여하는데, 금천교가 그런 것이군요? 나라님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는 문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김선권 : 그렇습니다. 덕수궁은 방송 시작하면서 말씀드렸던, 처음부터 궁궐로 지어지지 않았다는 특징 말고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태 또한 다릅니다. 덕수궁 내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각이 많아서 조선의 전통적인 전각과 서양식 건축물 그리고 동서양의 모습이 융합된 이국적인 풍경도 함께 즐기실 수 있습니다. 개항 이후 서구 열강의 외교관이나 선교사들이 정동 일대로 모여들면서 덕수궁도 빠른 속도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덕수궁과 주변의 정동에는 지금도 개항 이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건립된 교회와 학교, 그리고 외국 공관의 자취가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덕수궁이 다른 궁궐들과 달리 서양식 건축을 궐 안에 세운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서 덕수궁에는 독특한 건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이 사용했던 덕수궁의 침전인 함녕전 뒤편에 있는 정관헌은 전통식 지붕 구조와 서양식 기둥 양식이 절충된 건축입니다. 석조전은 내부와 외부가 모두 서양식으로 꾸며진 건물이고요.

 

▷이호상 : 석조전, 궁궐 속 석조전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시쳇말로 인테리어가 그렇게 됐다는 건데요. 

 

▶김선권 : 석조전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음을 알리는 서양식 황궁입니다. 석조전은 나무, 흙과 같은 조선의 전통 건축 재료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석조전이라고 이름이 지어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건축과 유럽 건축의 가장 큰 차이점은 건축 재료입니다. 우리나라는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을 이용해 벽을 만들었습니다. 벽의 무게가 가벼워서 큰 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양은 석재를 이용했습니다. 무거운 건축 재료의 하중을 버텨야 했기 때문에 창을 크게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석조전은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전각에 비해 창의 크기가 작습니다. 현재 덕수궁 권역은 고종 당시의 궁궐 면모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저마다 사연을 안은 유서 깊은 전각들이 오순도순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어당에서 석조전에 이르는 뒤쪽에는 도심의 번잡함을 잊게 하는 호젓한 산책로가 있습니다. 

 

▷이호상 : 산책로, 그러니까 석조전과 서양 건축물의 공통점이 약간 창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네요.

 

▶김선권 : 네 그렇습니다. 이제 덕수궁에서 아주 재미있는 부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광경을 못 보고 오시는 분들이 꽤 됩니다. 덕수궁의 후문과 영국대사관의 후문이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이호상 : 오 그래요? 그 당시에 영국대사관과 후문이 마주하고 있다. 

 

▶김선권 : 그렇죠. 그 사실만으로는 그렇게 크게 재미있을 것이 없죠. 그런데 덕수궁의 후문은 조선 왕궁의 수문장이 지키고 있고, 영국대사관의 후문은 영국 근위병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20세기 초반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호상 : 그렇군요. 20세기 초반의 풍경이라니, 어디서도 사실 볼 수 없는 정말 특이한 풍경이지 않을까, 머리에 그려지고 있는데. 보통 정문으로 가지 후문에는 잘 지나가지 않습니까? 덕수궁에 가면 꼭 후문을 들러야 하겠습니다. 이제 그럼 작가님, 시간 때문에 혹시 덕수궁에 가면 맛집이 있습니까?

 

▶김선권 : 덕수궁이 있는 서울 시청역에서 광화문까지 조금만 이동하겠습니다. 차로 5분이고 걸어가도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4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죽집입니다. 전복죽, 해삼홍합죽, 깨죽, 팥죽, 잣죽 등 10여 가지의 죽 요리만 하는 죽 요리 전문점인데요. 한자리에서 40년 동안 영업한다는 것은 이곳이 분명 맛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업소가 대물림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확인해본 결과, 사장님의 자손이 나와서 대를 이을 준비를 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없어지기 전에 빨리 그리고 자주 가보셔야 합니다. 

 

 

▷이호상 : 아, 덕수궁 근처에 40년된 죽집을 가보라는 말씀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 약속된 시간이 여기까지여서요. 오늘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2주후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선권 : 네, 고맙습니다. 

 

▷이호상 : 여행스케치 오늘은 서울 궁카스라고 하네요. 덕수궁을 들여다봤는데,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죠. 또 마지막 대한제국 황제가 머물던 곳인 덕수궁을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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