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재표 미디어날 대표 "옥천 가산사 '한일 평화의 날'... 임진왜란 왜장 후손, 첫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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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5.10.13 댓글0건본문
■ 출 연 : 이재표 미디어날 대표
■ 진 행 : 이호상 기자
■ 송 출 :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오전 8시30분 '충북저널967'
■ 주파수 : 청주FM 96.7MHz / 충주FM 106.7MHz
■ 코너명 : 정치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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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 내용을 기사에 인용하거나 방송에 사용시 청주BBS '충북저널967' 프로그램명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이호상 : 네, 생방송 충북 저널 967 정치 광장 시간입니다. 이재표 미디어날 대표 연결돼 있습니다. 대표님 나와 계시죠? 안녕하십니까?
▶ 이재표 : 안녕하세요.
▷ 이호상 : 대표님 연휴 잘 보내셨죠? 연휴 때도 큰 행사가 있었는데요. 이 추석 명절 연휴 끝인 지난 10일이었는데, 저도 앞서서 간단하게 저희가 보도를 해 드렸습니다만 옥천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가산사에서 열렸던 ‘광복 80주년 기념 한일 평화의 날 행사’, 화제가 됐던 게 이날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을 우리가 침략했던 왜장의 후손이 가산사를 찾았다는 거죠. 사죄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상황을 좀 전해주시죠.
▶ 이재표 :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장수의 후손들이 이 선조의 만행을 사과했는데요.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니까 무려 443년만입니다. 히사다케 소마, 24살이고요. 또 히로세 유이치는 70살인데요. 두 사람 나이 차이가 좀 있습니다. 지난 10일에 충북 옥천에 있는 가산사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한일 평화의 날 행사’에 참석해서 두 손을 모으고 선조의 잘못을 사죄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국가보훈부가 주최한 행사고요. 가산사가 주관했는데요. 이 두 사람은 임진왜란 때 각각 5진과 6진으로 한반도에 상륙해서 주로 충청 지역에서 이 조선을 유린했던 왜장의 후손들입니다. 이시사다케 소마는 5진 후쿠시마 마사노리 부대 소속의 쵸소 카베모토사카의 17대 손이고요. 히로세 유이치는 6진 모리 데루미츠 부대 소속의 도리다 이치의 17대 손입니다. 도리다는 가라스다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행사 시작 전에 현장에 모인 30여 명의 취재진 앞에서 자신들이 이 선조의 잘못을 사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거듭 사과하면서 이 평화를 지향하는 한일 관계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이들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술 장인의 집안에서 대대로 빚어온 술과 간장 등을 재단에 올리고 허리까지 숙여가며 사과했는데요. 이들은 또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이종학 씨 등 조선 장수의 후손들과 함께 각각 참회, 화해라는 족자에 서명한 뒤에 또 함께 평화 족자에 서명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 이호상 : 왜군 후손이 우리나라를 찾아와서 이렇게 사죄한 거 처음인 거죠?
▶ 이재표 : 맞습니다.
▷ 이호상 : 433년 만이라고 하셨는데요. 임진왜란 당시에 이제 우리 충남 금산 전투에서 순절했던 의승병들. 이렇게 의승병들을 기리는 추모제향 청주에서도 열렸고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이렇게 행사가 열린 날도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되는 거죠?
▶ 이재표 : 네 맞습니다. 깜짝 이벤트는 아니었고요. 이 가산사는 서기 720년, 그러니까 신라 성덕왕 때 지어진 절인데요. 그 임진왜란 당시에는 육지전의 첫 승전보였던 이 청주성 탈환의 주역인 영규 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사찰이기도 합니다. 영규대사는 1592년 음력 8월 1일에 관군 또 조원 장군의 의병과 연합해서 이 청주성을 탈환했는데요. 하지만 이 보름여가 지난 음력 8월 18일 충남 금산에 주둔하던 왜군의 본진과 전투를 벌이다가 의승병 1,500명이 모두 순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여파로 왜군이 찾아와서 불태웠던 가산사는 조선 인조 때인 1624년에 중건이 됐고요. 조선 숙종 때인 1675년에 호국사찰로 지정이 돼서 기허당 영규대사와 중봉 조헌 선생의 진영을 모시고, 해마다 이 제향을 올려왔습니다. 올해는 음력 8월 18일이 원래는 10월 9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날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빨간 날이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튿날인 10일에 추모제향이 열렸고 여기에 맞춰서 왜장 후손들의 방문과 사제가 이루어진 겁니다. 부산으로 입국한 후손들은 가산사 방문에 앞서서 충남 금산에 칠백의총을 참배했는데요. 칠백의총은 유교 국가였던 조선이 800여 명의 승병은 그 순절자 수에서 빼고 이름을 지은 겁니다. 이와 달리 가산사의 호국충혼탑은 각각 의병과 승병을 상징하는 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보다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이호상 : 그러니까요. 조선시대 숭유억불 시대였기 때문에 그만큼 또 승병들의 의미가 그 당시에는 좀 부각되지 못했었는데요. 왜장의 후손이 오랜 세월이 지나고 조상의 죄과를 사죄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좀 관심이 쏠렸었는데, 구체적으로 이 대표님, 지난 10일 행사에서 이 후손들이 와서 어떤 말을 한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또 발언 내용도 좀 소개해 주시고, 어땠습니까? 반응은 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 이재표 : 직접 이들을 만난 거는 행사 직전 5분 전에 현장에서 만났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발언을 할지 발언의 수위가 굉장히 궁금했는데요. 후손 가운데 히로세 유이치씨가 70살인데요. 1985년부터 6년 동안 그 당시 부산여대 현재는 신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여기 인문과에서 강의를 했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임진왜란의 출병지인 왜군이 출발한 장소인 큐슈 나고야성 박물관 학예원 교수를 지냈기 때문에 한일 관계사의 전문가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고요. 히로세 유이치 씨는 선조들이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조선을 침략한 뒤에 “수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를 했고요.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힘쓰겠다,”라고 하면서, “만약에 내가 나이가 들어서 못하게 되면, 이 젊은이가 해낼 것.”이라고 이제 히사다케 소마를 소개했습니다. 24살 청년인 히사다케 소마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서 선조들의 잘못을 알게 됐다면서 용서를 구한다.”며, “오늘 우리가 하는 이 사과가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이순신 장군의 13대 후손인 이종학씨를 비롯해서 당시 진주 목사였던 서예원 장군의 후손, 서재덕 씨 등 관군, 의병장의 후손 등 6명도 참석을 했는데요. 이 왜장의 후손들과 화해의 악수를 하고 또 얼싸안으면서 앞으로의 평화를 다짐했습니다. 특히 히로세 씨는 이순신 장군 후손인 이종학 씨의 손을 잡고 “이순신 장군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한다,”면서 “일본 사가현에는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모형이 있는데 자주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히로세 씨의 부인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여기에 대해서 이제 이종학 씨는 “늦었지만 이들의 사과가 고맙다.”면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앞으로 자주 만나서 화해하고 교류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서예원 진주 목사의 경우에는 귀나 코가 잘린 것이 아니라 목이 잘려서 그 유해가 지금 일본에 있다고 합니다. 서예원 진주목사 후손 서재덕 씨는 “조상을 생각하면은 화해가 쉽지 않지만, 마음을 다잡아서 이들의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이호상 : 왜군의 후손과 그 당시에 의병 또 특히 이순신 장군의 후손의 만남의 포옹이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런 만남이 정말로 한일 관계 발전에 큰 방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가산사 행사가 끝이 아니라, 다음 날에는 천안독립기념관에 이들이 찾아갔었다면서요?
▶ 이재표 : 네. 맞습니다.
▷ 이호상 : 그 뒷얘기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재표 : 이날 행사 참석자 중에는 광복 80주년 기념위원 자격으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참여했는데요. 호사카 교수의 이름은 일본 이름이지만, 20여 년 전에 한국으로 귀화를 한 한국인입니다. 이날 행사에 대해서 굉장히 기쁜 마음을 밝혔고 한일 관계가 화해 평화의 시대로 전환되길 바란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또 권오을 국가보험부 장관도 참석해서 행사 막바지까지 자리를 지켰는데요. 감동과 여운을 남긴 이날 행사가 늦게까지 이어지면서 당일 예정돼 있던 신채호 선생의 묘소와 영당 참배 또 손병희 선생의 생가와 영당 참배가 불발되는 듯했지만, 청주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다음 날인 11일 오전 일찍부터 일정을 시작해서 두 곳 다 방문해서 참배했고요.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까지 방문해서 겨레의 탑을 참배하는 것으로 모든 방한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지원 스님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면서, “내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또 일본의 총리가 이곳에서 만나서 임진왜란부터 시작된 가해와 피해 역사를 청산하고 양국의 평화적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원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해서 가산사 호국문화체험관의 한일평화포럼의 간판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조속한 시일 안에 일본에도 이런 평화포럼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후손의 사과를 주선한 사람은 김문길 전 부산외대 교수입니다. 김 교수와 지원스님은 3년 전 일본에서 열린 귀무덤과 코무덤 우리 이비총이라고 하는데요. 이비총 위령제에서 만나서 이비총의 국내 봉환을 추진하기로 했고 이 과정 속에서 이번에 왜장 후손의 사과를 계획하고 준비해 왔습니다.
▷ 이호상 :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가 우리 충북 옥천 가산사에서 열렸다는 게 정말로 뿌듯하네요. 이 대표님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이재표 : 감사합니다.
▷ 이호상 : 지금까지 정치 광장 이재표 미디어 날 대표 함께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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