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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일 라디오 충북역사 기행] - 조혁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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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3.04.12 조회2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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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구요.  

     과거 같으면 요즘이 한창 논밭을 갈아야 할 시기인데, 

     우리 역사에서 소는 언제 집에서 기르는 가축동물이 됐을까요.

 

답변:

알다시피 구석기 시대는 무리지어 이동생활을 하다보니 주거지가 동굴이나 ‘막집’이었다.

 

그러다가 대략 1만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정착생활을 하면서 농경을 하기 시작하였다.

 

정착생활을 하다보니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또 집에 우리를 만들어 소, 돼지 등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소가 우리 역사에서 가축으로 길러지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다.

 

질문: 우리 역사 중에서 소와 관련된 풍속이나 제도를 살펴볼까요. 먼저 어떤 풍속이 있었을까요.

 

답변:

고구려나 부여에는 공통적으로 ‘우제점법’이 성행하였다.

 

우제점법은 불에 그을린 소발굽을 이용해 점을 치는 것을 말하는데요.

 

당시 고구려나 부여 사람들은 불에 그을린 발굽이 붙어 있으면 길하다, 

벌어지면 흉하다고 생각했다.

 

‘우제’할 때의 ‘제’는 발굽을 말하는데요. 

 

구제역은 발굽짐승의 입이나 발굽에 물집이 생기는 가축병이죠.

 

질문: 농경사회에서 소는 축력을 제공했기 때문에 무척 소중한 가축이었다. 우경 즉 소를 이용한 논밭갈이는 언제 우리 역사에 등장했을까요.

답변:

역사 문헌상 신라 지증왕 때 처음 나타난다.

 

이때가 서기 6세기 무렵으로, 학자들은 이때부터 부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는 부자인 농가만이 가질 수 있는데, 그런 상태서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으면 생산력의 차이가 더 벌어지게 된다.

 

이따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소는 현대인 1980년대까지도 

 

축력과 육류생산 때문에 농촌 사회의 경제력 1호 역할을 했다.

 

질문: 소와 관련된 지명은 전국적으로 많죠. 

     충북도내에는 소와 관련된 지명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답변:

청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우암산’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청주 우암산의 본래 지명은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조선시대까지 ‘와우산’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을 일제가 1935년 행정구역 개편 작업을 하면서 ‘와우산’과

 

와우산에 있는 절이름 ‘용암사’에서 한 글자씩을 따,

 

‘우암산’으로 개명하였다. 대표적인 왜식 지명으로 볼 수 있다.

 

질문: 앞서 소는 노동력과 육류생산 때문에 농촌 사회의 경제력 1호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완 관련된 재미난 표현이 충북도내에도 많이 존재했다면서요. 

 

답변:

먼저 ‘배냇소’가 있다. 달리 ‘씨암소’라고 한다.

이것은 경제적인 여유는 있으나 소를 먹일 사람이 없는 집에서 

 

암송아지를 남에게 주었다가,

 

2년 정도 뒤에 그 암송아지가 어미소가 되면,

 

낳은 송아지는 길러준 농부에게 주고, 자기 소는 되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양육비를 주고, 일정기간 ‘위탁 사육'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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