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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2일 여행스케치] - 김선권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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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3.06.22 조회2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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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려주는 남자, 로드그래퍼 – BBS불교방송 ‘여행스케치’ 영월 청령포 

 

□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연현철 기자

□ 프로그램 : 청주BBS 충북저널 967

□ 인터뷰 시간 : 6월 22일(목) 08:41 ~ 08:52

 

[앵커]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여행 스케치’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님 나와계십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김]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앵커]

지난주에 청령포에 대해 알아보다 시간이 부족했었는데, 계속 이어가야겠죠?

 

 

[김]

네, 단종에 관한 이야기가 좀 길어졌었죠. 본격적으로 청령포를 둘러보고, 단종의 능 장릉까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주에 단종 어소를 향해 절을 하듯 휘어져 있는 소나무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신기한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단종 어소 사방으로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소나무가 단종 어소 안쪽을 향해 굽어져 자라고 있습니다. 마치 임금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서 있는 신하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사방의 모든 나무가 안쪽으로 휘면서 자라나는 것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단종하면 생각나는 분들이 사육신이잖아요. 사육신과 단종을 추종하던 충심 가득한 분들이 소나무로 환생해서 단종을 지켜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앵커]

사방에서 단종 처소를 향해 휘어져 있다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듯한 모습입니다.

 

 

[김]

단종 어소 인근의 소나무 중에서 유난히 거대한 소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단종의 유배 생활을 보고 들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관음송입니다. 볼 관(觀)자에 소리 음(音)자를 쓰는데, 당시 처절했던 단종의 생활을 보았으니 관(觀)이요, 하염없던 단종의 오열을 들었으니 음(音)이란 의미를 가진 소나무입니다. 아랫둥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지며 자라나 있는데, 이 갈라진 가지 사이에 단종이 앉아 상념에 젖어 드는 경우가 많았었다고 합니다. 

 

관음송을 지나 나타나는 나무 계단 길은 망향탑으로 이어집니다. 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망향탑은 단종이 한양을 그리며 그리고 생이별한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면서 쌓았다고 합니다.

 

 

[앵커]

그럼 단종은 청령포에서 생을 마감한 건가요?

[김]

아닙니다. 단종이 청령포에서 머문 기간은 두 달 정도였습니다.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해 청령포가 물에 잠겼기 때문에 단종은 영월 동헌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으며,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영월에도 낙화암이란 곳이 있습니다. 단종이 관풍헌에서 승하하자 단종을 모시던 10명의 궁녀와 시종들이 모두 이곳 절벽에서 투신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단종이 영월에 머문 기간은 4개월 정도에 불과합니다. 

 

 

[앵커]

단종이 영월에 머문 기간이 생각보다 짧군요. 전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바로 영월도 유배되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김]

처음에는 상왕으로 경복궁에 거처했었습니다. 2년 정도가 지나고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실패로 노산군으로 강등되며 영월로 유배되었습니다.

 

이제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능, 장릉으로 가보겠습니다. 영월의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40곳의 왕릉 중 하나입니다. 장릉은 김포와 파주에도 있습니다. 모두 조선 왕실의 왕릉입니다. 물론 한글로는 모두 장릉이지만 한자가 다릅니다. 

 

장엄할 장(莊)자를 쓰는 영월의 장릉은, 이전에는 노산군 묘(墓)로 불렸었는데,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단종이 추존 복위됨에 따라 노산군 묘에서 장릉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앵커]

그럼 단종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묻혔던 건가요?

 

 

[김]

그렇습니다. 단종이 죽고 엄흥도가 밤중에 몰래 아들들을 데리고 가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산에 올랐는데, 눈보라가 쳐서 얼지 않은 땅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산속에 앉아있던 노루 한 마리가 엄홍도 일행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는데 노루가 앉았던 자리에는 눈이 녹아서 맨땅이 드러나 있어서 엄흥도 일행은 천우신조라 여겨 그곳에 단종의 시신을 매장한 후, 식솔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후에 단종이 복권되어 왕릉을 이장하기 위해 조정에서 지관을 내려보냈는데 그들이 살펴보니 단종이 묻힌 자리가 이미 천하의 명당이었기에 이장하지 않고 묘제만 고쳤다고 합니다.

 

 

[앵커]

전설같은 이야기네요

 

 

[김]

그렇습니다. 조선왕릉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수도인 한양 인근인 경기도에 주로 밀집해 있습니다. 이는 조선의 국법인 경국대전에서 '능역은 도성에서 10리(약 4km) 이상, 100리(40km) 이하의 구역에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죠. 

 

장릉은 이 원칙에서 벗어나 100리 밖 영월에 있는 이유는 처음에는 왕릉이 아니었는데 격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종이 복권되지 않은 시절, 장릉은 봉분도 없어 그냥 평평한 맨땅이었기에 다른 땅과 구분이 되지 않았고 풀도 무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지역 사람 중에 그 자리를 밟거나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그 주변에서 놀 때, 그 자리를 향해서 돌을 던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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