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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4일 여행스케치] - 김선권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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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진수 작성일2023.08.27 조회2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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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려주는 남자, 로드그래퍼 – BBS불교방송 ‘여행스케치’ 안동병산서원 

 

□ 출연 : 김선권 여행작가

□ 진행 : 연현철 기자

□ 프로그램 : [청주BBS 충북저널 967 / 9월 9일(목) 08:30~08:54(24분)

□ 인터뷰 시간 : 08:41 ~ 08:52

 

[앵커]

전국 곳곳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코너, ‘주말여행 스케치’ 오늘도 여행전문가 김선권 작가님 나와계십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김]

안녕하세요. ‘여행 그려주는 남자, 김선권’입니다.

 

 

[앵커]

작가님 오늘은 어디를 소개해 주실 건가요?

 

 

[김]

 

오늘은 안동병산서원으로 가보겠습니다. 제가 전에 ‘한국의 서원’이란 타이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논산돈암서원과 영주소수서원에 대해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는데, 오늘 소개해 드릴 안동병산서원도 돈암서원, 소수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입니다.

 

 

[앵커]

서원들이 같은 목적으로 세워진 교육기관이니까 당연히 유사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다른 점도 있겠죠? 그리고 언급해 주신 서원들을 들어보니까 특히 경북지역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원래 많이 세워졌습니다. 특히 안동지역은 퇴계 이황 이래로 그의 제자들이 영남학파를 주도하였고 그로 인해 서원의 설립이 많았습니다. 

서원의 수가 많아지면서 서원의 질적 저하가 가속화되자 영조 17년에 훼철령으로 200여 개소를 철폐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가 정조 때에 복설과 신설 등으로 다시 늘어났으며,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의 단호한 훼철령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47개소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되었는데, 영남은 13개소만 남게 되었습니다.

 

서원은 퇴계 이황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발전적인 의미로 시작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정치권과의 연계와 신분유지기구로 그 기능이 변화되면서, 18~19세기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앵커]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무리 영남지역이 퇴계 이황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서울 인근이 인구가 많아서 서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서원’ 중에 하나도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김]

그것은 두 번째 이유에서 설명됩니다. 서원 철폐령을 내렸던 게 대원군이잖아요. 그런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는 서원의 타락 외에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었습니다.

 

 

[앵커]

정치적인 의도라면?

 

[김]

대원군은 노론 계열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론의 근거지가 서울 경기 지역이었습니다. 대원군이 등용했던 남인의 근거지가 영남지역이었죠. 이런 이유로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서원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서원의 존립에도 정치적인 이유가 숨어있었네요. 

 

 

[김]

사람들에게 조선 시대의 교육기관이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보통 서당과 성균관을 이야기합니다. 성균관은 현재의 대학에 해당하는 중앙의 최고 교육기관이고 서당은 초등 교육기관입니다.

 

그리고 서원과 향교는 지금의 중등 교육기관에 해당합니다. 더불어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기능도 같이했습니다. 그래서 유생들이 공부하는 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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